추정 1940년대경, 스페인군 ‘솔트 앤드 페퍼 코튼 재킷’입니다.
특별한 아이템이 입고되었습니다.
처음 손에 들었을 때, 솔직히 이탈리아군의 제복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스페인군에서 이런 자태의 제품은 보기 어렵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밀리터리 재킷을 보아 왔지만, 이 제품은 저 자신도 처음 봅니다.
먼저 형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허리에서 끊은, 극단적으로 짧은 기장.
이것은 1930년대 말 영국이 채택한 ‘배틀 드레스(Battle Dress)’라는 상의의 계보에 해당합니다.
그때까지의 군복은 허리 아래를 덮는 긴 기장이 당연했지만, 기계화된 근대전에서는 차량에 타고 내리고, 엎드리고, 달리는 동작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기장을 허리에서 끊고, 밑단에 벨트 모양의 밴드를 둘러 몸에 고정해 버립니다.
이 발상이 각국으로 퍼져, 스페인 역시 같은 형태에 이른 것이지요.
밑단의 밴드에는 좌우 각각 2연의 버튼 탭이 달려 있습니다.
여미는 위치를 바꾸어 허리 둘레를 조일 수 있으므로, 입는 분의 체격에 맞춰 표정을 조절하실 수 있습니다.
어깨에는 에폴렛, 이른바 견장이 있습니다.
본래는 계급장을 달거나 장비 벨트가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군복다움을 가장 강하게 인상 짓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슴에는 산 모양의 플랩이 달린 패치 포켓이 좌우에 하나씩 있습니다.
포켓 가운데에는 세로 주름이 잡혀 있어, 물건을 넣으면 아코디언처럼 펼쳐집니다. 용량을 늘리기 위한 궁리가 그대로 의장으로 서 있다는 점이 참 멋집니다.
그리고 이 제품의 연대를 알려 주는 것이 모든 단추에 새겨진 문장입니다.
날개를 크게 편 독수리가 방패를 안고, 그 둘레에 리본이 감겨 있습니다.
이것은 1930년대 말부터 쓰인 스페인의 국장으로, 이 의장의 단추가 쓰인 점으로 보아 이 제품도 그 무렵에 제조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금도금 단추가 칼라에서 소맷부리, 견장, 밑단의 탭까지 모두 십여 개.
하나하나에 국장이 찍혀 있다는 것만으로도 볼만합니다.
원단은 검은 실과 흰 실을 꼬아 짠 솔트 앤드 페퍼의 코튼 트윌입니다.
멀리서 보면 온화한 그레이지만, 가까이 가면 검정과 생지색 입자가 촘촘히 섞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 아틀리에 코트에 쓰인 혼색 원단과 질감이 가까워, 밀리터리라기보다 오히려 장인의 작업복에 통하는 표정이지요.
촉감은 유연하면서도 심지가 남아 있습니다.
팔십 년 전의 면사는 지금의 것보다 굵고 고르지 않아, 그 불균일함이 이 원단의 음영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혼색 원단은 입을수록 검은 입자가 빠져 전체가 밝게 흐려져 갑니다.
이미 세로 방향으로 옅은 줄무늬 모양의 페이드가 나 있으므로, 그다음을 직접 이어 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컬러는 깨소금에서 비롯된 그레이입니다.
빛 아래에서는 희끄무레하게, 그늘에서는 깊게 가라앉아 보입니다.
무채색이어서 맞추는 색을 가리지 않고, 군용품에 흔한 카키나 올리브와 달리 거리의 옷으로 녹여 내기가 놀라울 만큼 쉽습니다.
흰 티셔츠 위에 걸치고, 아래는 검정이나 짙은 남색.
기장이 짧은 만큼 무게중심이 올라가 다리가 길어 보이므로, 슬림한 팬츠와 맞추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려 두고 싶은 것은, 단추가 모두 금색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것대로 당시 그대로의 모습이고 당당한 자태라 좋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복다운 인상이 조금 강한 편입니다.
만약 평소에 입는 것을 중시하신다면, 검정 계열이나 갈색 계열의 단추로 바꿔 다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놀라울 만큼 누그러져 입기 편해집니다.
물론 떼어 낸 금단추를 보관해 두시면 언제든 원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이 한 벌을 즐기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요.
사이즈 표기는 없지만, 일본 사이즈로 "M~L" 정도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어깨너비와 몸판 너비에는 여유가 있고, 기장과 소매 길이는 짧은 편인, 그야말로 당시 군복다운 치수입니다.
밑단의 밴드로 조이므로, 몸판 너비가 남아도 입은 모습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오염, 쓸림, 올 풀림, 작은 구멍 등의 사용감은 있지만, 착용에 문제가 될 만한 큰 손상은 보이지 않아 아직 충분히 입으실 수 있습니다.
같은 형태의 제품을 저는 아직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자료가 적은 스페인군의, 그것도 전쟁 전후의 혼란기에 만들어진 한 벌이니, 앞으로도 만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솔직히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본 적 없는 군복을 그저 그레이 재킷으로 입어 버립니다.
그런 호사스러운 놀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신가요.